Vexations No.3
2021
Gouache and Pencil on Cotton Paper
36x2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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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번 반복하여 매우 느리게 연주하라.
사전에 최대한의 침묵 속에서 진지한 부동성을 준비해야 한다."
한 페이지로 작곡된 에릭 사티(Erik Satie)의 피아노 곡 벡사시옹Vexations 위에는 이와 같은 말이 적혀있다.
약 18시간 소요되는 이 곡을 연주하기 위해 연주자들은 중간에 화장실에 다녀 오기도하고 간식을 먹기도 하며, 반복을 세기 위해 840장을 복사하여 한 연주에 한 장씩 바닥으로 던지며 숫자를 센다. 그래서 작곡가의 원곡을 연주하거나 듣는 행위보다 연주 도중 불현듯 청중이 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 객석의 대화 소리 혹은 연주자의 갑자기 빨라진 템포와 연주를 중단하는 순간을 목격하게 된다. 그래서 '괴롭힘, 괴로움'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반복 사이에서 돌연히 일어나는 상황은 원곡과 섞여 예기치 못한 움직임을 주어 악상 기호처럼 작용하며 연주의 종결이 아닌, 연주의 '그 직전'과 '그 후에' 발생되는 시차를 경험하게 한다.
이와 같은 시차는 '유실' 및 '허상'의 상태와 닮아있다. 이들은 묵음과 같이 읽히지 않아도 존재하며 기억을 수식하는 중요한 단서로 남는다.
그래서 기억 속에 남겨진 장면들은 기다림의 시간이 중요한데, 예기치 못한 순간에 머물고 사라지는 감각들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가공되지 않은 산길을 오르다 보면 풀숲이 무성해지는 여름에는 점점 길이 좁아지다가 어느덧 가을과 겨울로 가는 문턱에는 무성한 풀들이 점유했던 공간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서서히 드러난 공간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으면 유독 마음을 흔드는 장면이 있는데, 고요하던 숲에 순간 미풍이 일 때, 나무에 매달린 낙엽들 사이로 유독 한 낙엽만 빠르게 회전하는 순간을 목격했을 때이다. 분명 바람은 특정 낙엽만을 향해 분 것은 아니지만 마치 한 낙엽을 향해 불어오는 듯한 장면은, 바람이 비 사이로 부는 장면을 목격하는 확률처럼 느껴진다.
음악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스포르찬도(sfz)라는 기호로 표시한다. 악센트(accent)와 비슷한 셈여림으로 읽히지만 악센트는 앞, 뒤 음보다 확연한 차이가 있도록 강세를 준다면 스포르찬도는 손가락이 미끄러지듯이 연주하여도 즉 아주 여리게 연주하여도 순간 강함, 그 음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떨림을 느끼게 해야 한다. 그래서 '돌연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내가 목격하고 오랜 시간 응시했던 장면이 스토르찬도와 닮아 있었다.
"Play very slowly, the 840 repetitions of the piece.
Beforehand, prepare for a serene immobility during an ultimate silence."
It is written as above at the top of the one-pager piano piece, "vexations" by Erik Satie.
In order to fully play this 18 hours long piece, an artist may frequent to a restroom, eat snacks, and even throw away each printed pages of the total 840 pages of the piece in an effort to keep track of how many more repetitions to go. This dynamic opens the room for spontaneous sounds, including the sounds of small talks within the audience, door closings, unintended speeding up of the tempo or abrupt halting of the play by the artist. Hence, the piece is sometimes known as 'troublesome, conundrum'. The spontaneity adds unexpected movement to the piece, allowing the audience to experience the crevice between 'before hand' and 'after hand'.
Such difference in timing is similar to that of 'loss' of 'non-existential'. It serves as an important hint that can characterize certain memories. The remaining memories are those that originally imbedded certain lingering senses but which have now completely faded away. For example, during a walk of a trail on a mountain lacking any human designs during summer days, I observe that the pathway will gradually become narrower, while also observe that the pathway pivots back to being a broader path upon the verge of autume and winter. To gaze at the space for a prolong period of time, I encounter a rather interesting sight; a light wind blows and amongst the many barely clinging leaves on the tree branches, there is one leaf that is unusually swinging faster than the rest.
While it is obvious that the wind would not have blown for that one particular leaf, such movement is enough to indicate as such, which is somewhat similar to the probability of witnessing a wind blowing through the rain.
In music, people indicate such moment as Sforzando(sfz). It is intended to have similar effect as 'Accent' although while an accent emphasizes one note more than notes preceding and following such note, Sforzando strives to convey the unique innate vibration of the note that tends to be more instantaneous.
The aforementioned moment which I witnessed and gazed for a prolonged period of time is very similar to what Sforzando in music is aimed to port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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